그는 슬쩍 서리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보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무섭게 다시 남학생을 바라보며 성금성금 다가섰다. 그리고는 거칠게 남학생의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자신의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는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남학생의 목에 갖다 대었다. 칼이었다, 남학생은 그가 꺼낸 칼을 보고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사, 살려 주세요…….”

그는 남학생의 행동에 재밌다는 듯 피식 웃어버리고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말이지. 그렇게 착한 녀석이 못되거든?”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심성이 원래 삐딱한 사람이라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애들 보면 자꾸 더 죽여주고 싶어져.”

“…….”

“더욱 더 고통스럽게…….”

그가 살기 어린 눈빛이 남학생을 위협했다. 서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두 눈을 질근 감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남학생의 양쪽 팔을 칼로 그어냈다. 그리고는 남학생의 목에 칼을 갖다 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의 목에 선명한 칼자국을 새겨냈다. 살짝 그었을 뿐인데 남학생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남학생은 다리의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하지만 거기서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남학생의 팔을 잡고 꺾어내며 남학생의 허벅지를 향해 칼을 내던졌다. 남학생의 시끄러운 비명소리가 골목을 쩌렁쩌렁 울렸다.

서리는 그의 비명소리에 더욱 더 눈을 꼭 감았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그 광경에 서리는 가만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터벅터벅 서리 쪽으로 그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서리 앞에 선 그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서리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별로 내키지 않은 듯 말이다. 하지만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휘파람을 불며 핏방울이 튄 손으로 그녀가 잠그다 만 블라우스 단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서리를 저항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바라보다가 낮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엘.”

그가 서리의 부름에 단추를 잠그던 손길을 멈췄다. 그리고는 슬쩍 고개를 들어 서리의 얼굴을 응시하곤 단추를 잠그던 손을 서리의 뺨으로 가져다 댔다. 살짝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의 눈 밑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는 서리의 뺨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화장기 하나 없는 서리의 뺨은 정말 보드라웠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

“이 한.”

“…….”

“그게 내 이름이야. 윤서리.”

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서리는 그의 미소를 보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죽고 싶다. 이 남자 손에 있을 바에는. 그의 손이 뺨을 지나칠 때마다 서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절대 무서울 것 하나 없는 인간.
이 한……. 아니, 이 남자의 이름은 L이다.

- 죽여줘 본문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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